II

"바닥을 잘 쓸어라." 라이터의 아버지가 힘없이 말했다. 발작적인 기침이 노쇠한 몸을 뒤흔들었다. 그는 양손으로 입을 꽉 막았지만, 뼈만 남은 손가락 사이에서 가래가 흘러나오는 걸 라이터는 볼 수 있었다. "여관을... 깨끗하게..."

"그럴 거예요, 아버지. 수프를 다 드셔야죠." 라이터가 말했다.

"못 먹겠다... 맛이 이상해..."

"비아가 오늘 아침에 아버지를 위해 특별히 만든 거라고요." 그는 생각보다 참을성 있게 말했다. "어서 회복하셔야죠. 다 드세요."

라이터는 문을 꼭 닫고 휴게실로 향했다. 점심은 몇 시간 전에 나왔던 터라, 아직 탁자에 앉아 있는 손님은 셋뿐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상인 두 명이 서부원정지 포도주 가격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고, 뭔가 종교적인 냄새가 나는 친구 하나가 두꺼운 책의 책장을 조용히 넘기고 있었다. 라이터는 계산대 뒤로 걸어갔다. 아내가 식칼을 갈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차 좀 더 갖다 줄 수 있을까?" 라이터가 말했다. "오늘 상태가 별로 안 좋으셔."

"꿀 좀 드릴까?" 비아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라이터는 한숨을 쉬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꿀이 비싸졌다. 트리스트럼에서 상인이 오는 게 늦어지고 있었다. 그는 다음주까지는 상인이 와주길 바랐다. 그러지 않으면, 오아시스 여관엔 곧 생필품이 떨어질 것이다.

"안 그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라이터는 재빨리 덧붙였다. "꿀이 부족하면 손님들이 불만족스러워할 거고, 그럼 우리 여관 평판이 떨어진다고.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 비아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상황을 아셨다면 아버지 스스로 꿀은 필요 없다고 하셨을걸. 이 여관은 아버지한테 전부라고. 그분의 유산이야." 라이터는 잠시 꿈지럭거리고는 항복한 듯 두 손을 쳐들었다. "알았어. 꿀을 드려. 조금만."

아내의 눈은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어쨌든 그녀는 차를 만들었다... 꿀을 넉넉히 넣어서. 그러고는 차를 들고 계단 위로 사라졌다.

라이터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항복했는데도 아내가 나중에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낼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별 이유 없이 라이터의 기운을 빼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여관 문이 활짝 열렸다. 휴게실에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라이터는 계단 쪽을 조금 더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아시스 여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나으리.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나으리? 부인보단 낫네." 재미있어 하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말했다.

라이터는 뒤돌았다. 새로운 손님은 육중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팔구 년 전에 본 바로 그 갑옷이었다. 투구, 가슴 보호구, 방패, 도리깨, 자카룸의 표식이 수놓인 긴 망토... 그녀였다. 라이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성전사?' "아... 죄송합니다, 부인."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그녀는 가볍게 쿡쿡 웃었다. "'부인'이라. 내 이름은 그냥 아나진인데."

"죄송합니다... 아나진." 라이터는 말했다. 그게 그녀의 이름이었던가? 아나진은 기억 속의 모습과 달라 보였다. 머리카락은 더 옅고 길었고, 턱의 윤곽이 더 뚜렷했고, 코는 더 작았다. 이상하게도, 전보다 젊어 보였다.

그는 휴게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서 불안한 사람이 자기뿐만은 아니라는 게 조금 위안이 됐다. "방이 필요하십니까? 제자분도 같이 머무시나요?" 제자. 뱃속이 뒤틀렸다. 뒤집힌 탁자와 두꺼운 얼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혹감이 치밀었고, 그는 그 기억을 재빨리 몰아냈다.

"한 명이 지낼 방 하나면 돼. 아직 제자를 찾지 못했거든." 그녀는 말했다. "도서관도 다시 가고 싶은데."

라이터는 그녀를 이끌고 휴게실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물론이죠. 저희 도서관은..." 목소리가 잦아들며 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직 제자를 찾지 못해?'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땐 아나진에게 제자가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모든 끔찍한 일들에 대한 라이터의 기억이 부정확한 듯도 했다. 그는 그 생각을 떨쳐냈다. "케지스탄에서 최고죠. 물론, 칼데움 밖에서 말입니다."

아나진은 그와 보조를 맞춰 걸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갑옷이 무겁게 절그럭거렸다. "이 사막에 있는 벽지 마을을 서른 다섯 개는 넘게 방문했는데, 너와 네 아버지 말이 맞아." 그녀는 말했다. "큰 도시 바깥에서 본 도서관 중엔 여기 있는 게 제일 크더군. 사실 이런 마을에 이런 도서관이 있는 걸 아예 본 적이 없어."

"아버지 생각이셨죠." 라이터가 말했다. "칼데움의 안식처는 작은 마을이지만, 남쪽 경로를 따라 칼데움으로 가거나 칼데움에서 오는 거의 모든 사람이 여기 머무르거든요. 아시겠지만, 오아시스 때문에 말입니다. 고약한 사막을 지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죠. 아버지는 교수나 학자, 순례자들 중 많은 수가 길 저쪽에 있는 선술집에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데 주목해서, 그들을 끌어들일 만한 뭔가를 마련하신 겁니다."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 거였지만.' 라이터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빈곤한 학생에게 조용한 공부방을 제공하는 것보다는 포도주나 다른 주류를 파는 게 훨씬 돈이 잘 벌렸다. "그래서 아버진 자신이 책을 살 의향이 있다는 걸 상인들에게 알렸죠."

"아버지는 잘 계셔?"

"곧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라이터가 말했다.

아나진은 고개를 숙이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뭔가 내가 도와줄 게 있니? 그분을 뵐 수 있을까?"

"요샌 의식이 또렷하지 않으십니다. 옛날 기억으로 그분을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아나진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도서관의 문이 바로 앞에 있었다. "지난번에 온 이후로 새 책이 많이 들어왔니?"

"그런 것 같습니다." 라이터는 말했다. 사실 그 자신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는 도서관 문을 열었다. "여깁니다."

"고마워."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한 걸음 물러서자 머리카락이 조금 라이터의 손에 스쳤다. 금발, 그는 깨달았다. 갑자기 모든 게 한꺼번에 기억났다... 스승, 갈색 머리카락, 이름.

"너... 넌 아나진이 아냐. 넌 그 제자잖아!"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가 돌아왔다. "이젠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 갑옷은... 넌 네 이름이 아나진이라고 했어!"

"그게 내 이름이니까." 여자가 말했다.

라이터의 당혹감은 분노로 변했다. 그녀가 자신을 놀리며 비웃는 것 같았다. 또다시. "그건 네 스승님 이름이잖아!"

"그리고 내 이름이야." 그녀는 아직도 웃고 있었다. "그게 정말 그렇게 이상해?"

"넌...!" 라이터는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네 스승님인 것처럼 얘기하잖아." 그는 씩씩거렸다. "날 속이려는 거였어? 지난번에 이미 충분히 나한테 망신 주지 않았나?"

"무례하게 굴 생각은 전혀 없었어. 난 성전사야. 아나진이고." 그녀는 말했다. "내 스승님이 그랬던 것처럼. 내 스승님의 스승님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이름이 아나진이라고?"

"스승님의 방패를 물려받을 때, 그분의 대의와 이름도 함께 물려받았어." 그녀가 말했다.

"방패를 물려받아?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 스승님이..." '돌아가셨어?' 라이터는 갑자기 알고 싶지 않아졌다. 그는 다급히 주제를 바꿨다. "아직도 우레에 대한 책을 찾고 있어?"

"아니." 그녀는 말했다. "탈 라샤의 분실된 회고록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어."

"아... 알겠어."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럼 볼일 봐." 그는 황급히 도서관을 빠져나와 휴게실로 돌아왔다.

비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손님이야?" 라이터는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비아가 물었다.

"몇 년 전에 여기 왔었던 여자야. 내 생각엔 미친 여자일지도 몰라." 그는 속삭였다. 비아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라이터는 상인들이 사용한 접시를 치우고, 다른 탁자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물 한 주전자를 가져갔다. '미친 거야.' 라이터는 남자의 잔을 가득 채우며 생각했다. '제정신이라면 누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물려받고 그 사람의 삶을 살려고 해? 이성적이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책을 다 팔아 치우는 데 얼마나 걸릴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저 성전사가 다시 돌아올 이유가 아예 없는 게 제일 나을지도 모른다.

심각한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주인장." 방금 잔을 채워준 남자였다. 종교적인 냄새가 나는. "그 여자 누구요? 갑옷 입은 여자 말이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라이터가 말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이상한 여자예요."

남자는 책을 덮었다. 익숙한 자카룸의 상징 중 하나가 표지에 그려져 있었다. 성전사가 지닌 표식과 매우 비슷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남자도 아나진의 갑옷과 영 다르진 않은 갑옷을 입고 여기 도착했었다. "그 여자가 전에도 여기 온 적이 있소?" 남자가 물었다.

그의 말에 약간 날이 서 있는 게 거슬렸다. "한 번이요. 몇 년 전이었습니다. 전 그때 아직 어린아이였죠." 그는 자기 말투가 그녀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길 바라면서 말을 이었다. "이상한 여자 같았습니다. 생각이 그렇게 이성적이라고 할 순 없더군요. 하지만 해가 되는 사람은 아니었죠." 문득 자신이 남자의 의도를 오해한 건 아닐지 걱정됐다. "혹시... 친구분이십니까?"

"아니오." 그 목소리보단 얼음이 차라리 더 따뜻할 지경이었다. "이성적이라고 할 순 없다니, 흥미롭군. 당신은 어떻소, 주인장? 당신은 이성적인 사람 같소?"

"그런 것 같은데요." 라이터가 말했다.

"정말 그렇소? 그런 사람이 왜 이단자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겠소?"

라이터는 한 걸음 물러섰다. "네?"

"그 여자의 갑옷에 있는 표식을 봤소. 망토에도. 그 표식들은 장식용이 아니오." 남자가 일어서자 라이터는 처음으로 그의 건장한 체격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자카룸의 손에 소속된 성기사요. 타락과 이단을 발견하는 즉시 제거하지." 그는 손가락으로 라이터의 가슴을 쿡 찔렀다. 여관 주인은 거의 넘어질 뻔했다. "그 여자에게서는 빛이 느껴지지 않소. 뭔가 다른 게 느껴지오. 당신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여관에 그녀를 머물게 할 순 없소. 당신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오, 주인장?"

"네, 네, 물론이죠." 라이터가 째지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왜 그 여자를 그냥 두는 거요?" 성기사가 말했다.

라이터는 위압적인 남자 앞에서 몸을 떨었다. 이렇게 화난 성기사는 본 적이 없었다. "전 자신이 빛의 은총을 구한다고 하는 모든 이를 정중하게 대합니다. 그녀가 누군지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을 성전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전 그녀가 당신의 교단에 속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용서하십시오." 그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무지가 저에게 무거운 죄를 저지르게 했습니다. 용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으리?" 그는 숨을 죽였다.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성전사?" 라이터는 재빨리 위쪽을 훔쳐봤다. 성기사는 그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 이름이 왜...?"

"말씀만 하십시오. 당장 여관에서 그 여잘 쫓아내겠습니다, 나으리." 라이터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성기사는 생각에 깊이 빠진 것 같았다. "알겠소. 그녀에게 여관 앞에서 보자고 전하시오. 내 직접 그녀의 의도가 뭔지 조사할 거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녀를 상대할 거요." 그는 책을 가지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라이터는 불안한 듯 서서 이마에 밴 땀을 닦아냈다. '잘됐군.'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나진 스스로 성기사와 그녀 사이의 문제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바깥에서. 되도록 여관에서 먼 곳에서. 성기사가 위층에서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철컹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이터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자기가 얼마나 겁먹었는지 아나진이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몇 방울의 물과 피 때문에 그가 창피를 당하는 꼴을 본 적이 있다. 아니, 그는 결심했다. 간단히 아나진에게 나가라고 하겠다고.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은 라이터의 여관,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라이터의 여관이 될 곳이었다. 그리고 라이터는 그녀가 여기 없길 바랐다. 이성적인 생각 같았다.

그가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 아나진은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나진, 아니 이름이 뭐든, 당장 나가 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눈을 들어 라이터를 보고는 페이지를 하나 넘겼다. 읽고 있는 부분을 금속 장갑에 덮인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

"바깥에서 뭔가 성난 말소리가 들리던데." 그녀는 말했다.

"남자가 하나 있는데... 성기사야. 그가 넌 이단자라고 하더군." 라이터가 말했다.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성기사라면 그럴 것 같네." 그녀의 눈은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라이터는 잠깐 동안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했다. "그가 날 죽이겠다고 위협하든?" 그녀가 물었다.

"글쎄, 그건... 응." 라이터는 단호하게 말하려고 애를 썼다. "내 생각엔 널 죽이려는 것 같아. 지금 바깥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널 보내서 경고를 해주다니, 착하네."

그녀는 계속 책을 읽었다. 라이터는 불편한 듯 자세를 바꿨다. "너 나가서... 그와 맞서지 않을 거야?"

"결국엔 맞서게 되겠지. 그가 그때도 거기 있다면." 그녀는 말했다. "좀 기다려야 할 거야. 읽을 게 많이 남았거든. 어쩌면 그가 좀 더 나은 다른 할 일을 찾을지도 모르지."

라이터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를 끌고 나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계속했다. "아나진, 내 여관을 나가줬으면 좋겠어. 지금 당장."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라이터는 폭발했다. "대체 넌 뭐가 문제인 거야? 그 책에 뭐가 들어 있길래 널 죽이려는 남자보다 더 중요한데? 대체 왜 내 여관에 돌아온 건데?"

아나진은 한숨을 쉬고는 책을 내려놓고 똑바로 앉았다. 갑옷이 가볍게 절그럭거렸다. "너희 아버지가 내 스승님께 물었었는데..."

"진짜 아나진? 첫 번째 사람?" 라이터가 아무 생각 없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응, 그래. 하지만 그분이 첫 번째는 아니야. 아나진은 수백 년 전부터 성전을 시작했어." 그녀는 말했다. 라이터는 눈을 껌벅였지만, 그녀는 계속했다. "너희 아버지가 우리의 성전에 대한 모든 걸 내 스승님께 물었어. 너한테 말씀 안 해주셨어?" 라이터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짧게 말할게. 난 내 신앙을 구원할 무언가를 찾고 있어."

"구원... 무엇으로부터?"

아나진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부패로부터. 타락으로부터."

"그럼 저 성기사는 왜 너를 그렇게 미워하는데?"

"누가 너한테 네 신앙은 뿌리부터 문제가 있다고 하면 넌 기분 좋겠니? 결국엔 썩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부를 거라고 하면?"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바깥에 있는 성기사는 지위가 높지는 않을 거야. 성전에 대한 건 그가 속한 교단 내에서 지도자들한테만 공유되거든. 만약 그자가 그들 중 하나라면, 이렇게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않을 거야."

"그럼 어쩔 건데?"

"날 죽이려고 네 여관을 발칵 뒤집겠지." 아나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자가 말귀를 알아듣게 설득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어. 만약 설득하지 못하면 아마도 난 이 마을을 떠나야 하겠지. 그러니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이걸 다 읽을 거야."

"하지만 그자는 나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결국 뱉고 말았다.

잠깐 침묵. "그랬어?"

"뭐, 꼭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아나진이 그의 말을 잘랐다. "어쨌든 넌 위협을 느꼈잖아." 질문이 아니었다. 아나진은 책을 덮었다. "그럼 당장 떠날게. 네가 나 때문에 위험을 느끼는 건 원치 않아.

하지만 이 책은." 그녀는 책을 들어올렸다. "내게 팔아 줄래? 좋은 값을 쳐줄 수 있어."

라이터는 그녀를 응시했다.

***

암피는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참을성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마치 모래시계에서 모래알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여관 앞길에 바람이 몰아쳐, 그의 갑옷에 모래를 불어댔다.

"성전사." 성기사가 중얼거렸다. 어디서 그 이름을 처음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책에서 읽은 것일까? 쿠라스트에서 수습생으로 공부할 때 배웠던가? 아니다.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이 왜 이토록 신경 쓰이는 것일까? 성전사란 자들은 암피가 속한 교단의 친구는 아니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지식조차 확실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의 갑옷을 장식한 표식들은 조심스럽게, 경건한 방식으로 그려져 있었다. 명백한 신성 모독은 없었다. 그녀는 광대도 아니었고, 몸에 자카룸의 표식을 그리고 싸구려 선술집을 돌아다니는 배우도 아니었다.

'체니스.' 암피가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은 이름이었다. 트라빈칼 사원에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그 소년은 지식에 대한 마르지 않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체니스는 어느 날 밤, 자카룸의 손 장로 중 한 명의 연구실에 숨어들어가서 책을 한 권 훔쳤다. 그는 흥분해서 암피에게 자기가 알아낸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학생들은 결코 배운 적이 없는 것들을. 그는 심지어 조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체니스는 숨겨진 지식을, 잊힌 범죄를 찾아냈다. 신앙 안에 있는 균열을 찾아냈다. 이상하게도 체니스는 얼마 후에 사라졌고, 암피는...

체니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암피는 화가 났다. 익숙한 감정이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에 증오와 분노가 흘러 들어왔다. 마치 더러운 것들이 덮인, 독물이 가득 찬 저수지에 그 기억들이 잠겨 있는 것처럼. 곧 그의 궁금증은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졌고...

성전사였다. 암피는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참을성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누르며 눈을 깜빡였다. 방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어린 시절의 친구? 그거였다. 그는 그 생각을 마음속에서 몰아냈다. 집중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저랑 얘기하고 싶어하셨다고요?" 그 목소리가 암피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그녀가 와 있었다.

암피는 사람들이 거리 여기저기서 쏜살같이 실내로 달려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여행자고 주민이고 할 것 없이 숨고 있었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암피는 생각했다. 그는 여자가 자신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녀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성기사여?" 그녀가 물었다.

"이름을 말하라." 그가 매몰차게 물었다. "네가 누구인지, 혹시 악의 지배를..."

"제 이름은 아나진입니다. 성전사고요." 그녀가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리고 전 조용한 대화를 나누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난 악과 협상 따위 하지 않는다. 발견하는 즉시 벌하지." 암피가 쏘아붙였다.

"잘됐네요." 아나진이 쾌활하게 말했다. "그럼 우린 공통점이 있군요. 하지만 오늘 뭔가를 벌할 일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나요?"

암피는 빠른 동작으로 검을 뽑았다. 그녀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건 암피를 더 화나게 할 뿐이었다. "넌 이단자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넌 나의 신앙을 따르느냐?" 그가 성난 듯 외쳤다. "자카룸교에 충실한가?"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아닙니다." 아나진이 말했다. 말을 멈추고, 그녀는 동정 어린 눈길로 그를 살폈다. "우리에겐 공통점이 많습니다, 성기사여. 아주 많지요. 우리 둘 다 같은 것을 바랍니다."

암피는 땅에 침을 뱉었다. 이 여자의 말이 왜 이토록 그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일까? 그는 여기서 당장 그녀를 공격하고 싶은 걸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그 욕망은 점점 강해졌지만, 그는 저항하며 딱딱한 목소리로 계속 몰아붙였다. "네가 걸친 그 표식들. 그건 신성한 표식이다. 넌 그 표식을 지닐 자격이 없다."

성전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을 괴롭히는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에 대해 아는 바를 말씀해 보십시오."

"넌 나의 믿음을 모독한다." 그는 말했다.

"어떻게요?"

"난... 모르겠다." 그는 내뱉었다.

"제가 아는 건 이겁니다." 아나진이 말했다. "악은 어디서든 자라날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요. 선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 안에서도 자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경계하지 않는다면요."

"조용히 해." 암피가 속삭임처럼 말했다. 분노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당신을 지금 있는 곳으로 이끈 그 길이 후회로 점철돼 있다는 걸 압니다." 그녀는 계속했다. "당신이 정의를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걸 압니다. 믿음 안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이 의심하게 되었음을 압니다. 당신이 그걸 이해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신이 강하다는 걸 압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진정으로 악에 굴복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제발 그만해." 암피는 간청했다. 그녀가 옳았다. 모든 것에 대해. 교단이 취하는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순간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당신이 빛의 영광을 느꼈다는 걸 압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맹세를 저버렸겠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그걸 들판에서, 세상 한가운데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느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트라빈칼에선 아니었지요. 당신네 교단의 사원 안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그 대답이 당신에게서 숨겨져 있었는데도요."

미간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는 그 격류에 깊이 잠겨 진실을 찾았다.

그가 본 것은 돌이었다. 어둠이 돌을 둘러싸고 있었다.

무언가 무너졌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일순간 사라졌다.

증오였다. 증오가 그 자리를 채웠다. 순수한, 눈먼 증오가.

암피는 성전사에게 칼을 겨누고, 그녀를 처음 본 이래 처음으로 목표가 명확해짐을 느꼈다. 그는 두 손을 들어올려 빛의 힘을 불렀다. "말은 이걸로 충분하다, 이단자야. 죽어라!" 그는 울부짖었다.

아나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만 한다면." 그녀는 암피가 자신에게 힘을 쏟아내자 슬프게 미소 지었다.

***

라이터는 성기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표정이 험악해진 건 확실했다. 여관집 아들은 창문으로 계속 밖을 엿보았다. 잠시 후, 비아도 그의 옆으로 왔다.

"들어가." 그는 속삭였다. "여긴 안전하지 않아."

"당신 먼저." 그녀는 말했다. 라이터는 그녀를 쏘아보았지만, 번쩍이는 빛이 그의 시선을 다시 거리로 잡아끌었다.

비아가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라이터는 움찔했다. 성기사가... 무언가를... 한낮의 태양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불러냈다. 성기사는 그것을 머리 위에 띄우고 아나진에게 뭐라고 고함친 후, 그녀에게 그 빛을 날렸다.

빛이 아나진과 충돌하기 직전에, 라이터는 그녀가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고, 아나진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불길이 솟구쳐 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성전사는, 흔적도 없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하늘에서 순수한 힘과 광채가 담긴 번개가 내리쳤다. 아나진이 번개와 함께 내리꽂혔다. 성기사는 자신에게 닥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라이터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팔을 들어 눈부신 빛을 가리며 비틀비틀 뒤로 물러났다. 팔을 내렸을 때에도 그 번개가 아직 그의 시야에 날카로운 보라색 형체로 어른거렸다. 격하게 눈을 깜박이며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보았다. 아나진이 홀로 서 있었다. 침착하게. 몸 옆에서 도리깨가 천천히 흔들렸다.

성기사의 흔적은, 있었다. 대부분 멀리 흩어져 있었다. 아나진을 둘러싼 모래가 축축해진 것 같았다.

라이터는 몸이 떨리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비아는 두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라이터는 멍해진 채 아나진이 갑옷에 달린 고리에 도리깨 자루를 꽂는 것을 응시했다. 마지막으로 여관 쪽을 한 번 바라보고, 아나진은 서쪽으로 걸어갔다. 길을 따라 칼데움의 안식처 밖으로. 석양을 길잡이로 삼아.

완전한 침묵이 그녀와 함께했다. 온 마을이 숨을 죽이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위층에서 소리가 나는 게 들렸다. 아버지의 침실이었다. 라이터는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문을 열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의 아버지는 최근 몇 달 중 가장 생기에 차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이 사막으로 사라지는 아나진을 쫓았다. "그 여자구나. 그렇지? 몇 년 전의! 다시 방문해 주길 기대했지. 뭔가 있는 여잔 줄 알고 있었어. 저 망나니 자식을 제대로 손봐 준 거지. 응?"

"그런 것 같네요." 라이터가 대답했다. 

여정의 끝

성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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